-권순정 대표 인터뷰
도서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04년. 당시 가좌2동 주민자치위원회는 ‘동네일’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동장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서로 문제의식이 비슷했다. 이게 맞물리면서 ‘일하는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들자고 의욕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일단 동사무소와 함께 해보자”는 마음으로 행정에 문을 두드렸다.
지금 도서관이 위치한 장소는 행정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마련되었다. (그래서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 처음엔 동네 사랑방이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돌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나자, 모르긴 몰라도 매일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또, “어떻게 하면 모두가 즐거워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던 선배 그룹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이니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무언가 같이 해보자고 말하게 되었다. ‘큰일을 벌여보자!’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진지한 고민보다 수다를 떨면서 보내거든.(웃음)
우리는 설문조사 하는 걸 좋아한다.(웃음) 맞벌이 부부가 많고 교육열이 높은 동네 특성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묻기로 한 것이다. 인근 초등학교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 지 물어봤더니 ‘아이들이 5분 내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을 원한다는 답변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에 관한 전문성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한 일이 전국의 어린이도서관을 투어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민관이 협력하여 주민자치센터 안에 도서관을 만든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주민들이 함께 자원봉사자 모집/주민 토론회/도서기증운동/도서관 후원회 등을 진행하며 참여의 폭을 넓혔다. 도서관 이름도 공모를 통해 결정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주민들이 협력한 결과, <푸른샘 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도서관인 이유가 있었을까요?
당시 TV 프로그램 중에 ‘기적의 도서관’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작은도서관이 하나 둘 생기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책을 통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도서관이니까 일단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려면 재밌는 곳, 편한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에겐 놀이가 밥이다. 맘 놓고 놀 수 있도록 블록놀이도 하고, 엄마들이 유아를 위해서 책을 읽어주는 활동도 하게 됐다. 나중에는 놀이가 육아로 번져 나가서 내 아이 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계가 돈독해졌다. 어린이도서관을 주민자치센터에 만들게 된 의도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 동네 엄마들이 온갖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이웃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돌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도서관은 이용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소통공간이 되어야 한다.
도서관은 성격 자체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공공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용하시는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푸른샘 어린이도서관의 이미영 쌤은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걸 느껴요. 그동안에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생각하는 힘이 약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함께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니까 생각이 바뀌고, 성취감도 생기고, 결과적으로 내가 변화되는 경험을 했어요.” “집에서 수다만 떨었으면 그냥 소비만 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소비주체에서 생산주체로 변화된 거죠. 아이들에게도 그런 엄마들의 모습이 훨씬 교육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죽하면 애들은 내가 도서관만 가면 ‘엄마는 맨날 도서관에 회의하러 간다.’고 말할 정도에요.” 라고 말했다.
푸른샘을 포함해서 느루, 사람사이 세 곳 모두 주민들의 협력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도서관에 드럼이라니요? 생경한 느낌입니다.
푸른샘을 이용하던 초등학생들이 중학생이 된 후에는 갈 곳이 없었다. 인근에는 초, 중, 고등학교가 11개나 있는데, 여전히 아이들이 머물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청소년 공간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자주 가는 곳은 PC방과 노래방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공간은 악기연주실, 춤추는 곳, 토론 공간 등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설문조사를 통해서 주민의 요구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설문을 한 아이들 중에 ‘청소년 운영위원’을 제안했을 때 같이 하겠다고 전화번호를 적어 낸 아이들이 96명이나 됐다. 그 중 50여명과 함께 도서관 공간을 디자인했다. (장소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의견을 내고, 공유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러한 주인의식이 도서관을 만드는 데에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 모두가 주방을 필요로 했다. 소파도 넣자고 건의하더라. 그래서 함께 찾아다니면서 준비했다. 드럼도 마찬가지다. 밴드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청소년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낼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이 스스로 협의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그렇게 2011년, 청소년 인문학도서관 <느루>가 탄생했다. 느루에는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는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을 천천히 키우자’라는 뜻이 담겨있다. 주민 여러 사람의 노력, 십시일반해서 기부된 물품들 하나하나가 모였다. 주민들 각자는 가슴 속에 ‘공동의 도서관’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멋진 경험을 갖게 되었다.
도서관 운영이 언제까지 자원활동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속 가능한 마을, 그리고 함께-천천히-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그래서 마을에서 함께 일하는 체계(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느루 옆에 북카페 <사람사이>를 열었다.
사람사이에서는 동네에서 만든 수제쿠키, 공정무역 커피, 공방물품 판매(북아트), 모임전문 공간 대여, 헌책물물교환 등의 활동을 한다. 마을기업의 수익은 도서관 운영비용, 지역사회 청소년교육과 복지기금으로 다시 쓰인다.
‘노는 것’과 ‘거르지 않고 하는 것’을 잘한다. 매주 모이기 시작한 게 벌써 379차를 맞이했다. 특별하게 뭘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은 아니고, 공간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논의를 한다. 그렇게 중․고등학교와 연계한 ‘진로스쿨’을 열었다. 진로스쿨은 아이들의 진로 설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직업세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서 이끌고자 하는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인물을 섭외하는 것도 아니다. 동네 아저씨. 시장 상인들을 모시고/찾아가서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밖에 토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오후의 작은음악회’ 등을 기획해서 동네잔치를 열기도 했다.
도서관은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항상 쓰기만 해서 그렇다. 그래서 살림이 힘들 때는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의 의식이 변해서, 뜻을 같이하고(공감하고) 있기에 괜찮다. 동사무소에서도 지속적으로 협력해 주고 있다. 우리가 제안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또, 어른들이 직장과 병행해서 도서관에 근무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 공간을 지켜내는 게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도서관 안에서 동고동락한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선후배 관계를 맺는데, 형제 수가 적은 요즘,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 같아서 좋다. 게다가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도 서로 친구가 된다. 공간이 주는 고마운 경험이다.
# 천천히, 길게 걸어가기
옛날에는 집에서 일을 많이 시켰다. 그러면서 삶에 필요한 여러 요령들을 익혔다. 요즘은 부모가 너무 많은 걸 해준다. 그래서 애들이 공부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도서관은 좀 나은데 중학교부터는 바빠서 필독서만 챙겨 보고 만다. 이제는 소비하면서 보내는 시간에 익숙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눈앞에 놓인 것을 향해 달리도록 만드는 사회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안타깝다. 느루에 오는 아이들은 차분히 자기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 함께 키우는 아이, 자라면서 존중받는 경험을 하기를
모두가 공부를 잘 할 수는 없다. 다만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도우면 한 명의 아이라도 무상으로 교육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려 한다. 한 명이라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을까봐 사람이 없어 텅 비어도 늦게까지 문을 연다. 혹시라도, 한명이라도 올까봐 문을 닫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돌봄이 필요해서 와야 하는 아이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도서관의 영역을 높게 본다.
아이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까? ‘문화공간’이자 ‘놀이공간’이라고 부르면 많이 찾아올까? 한번은 자기 혼자 골똘히 생각만 하는 성향의 아이가 느루에 열심히 오는 것을 보고 그 애 부모가 안심하더라. “어차피 딴 데 가서도 시간 보낼 거, 도서관이니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느루는 도서관의 탈을 쓴 놀이터인데.(웃음)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는 꿈이 많다. 그런데 중학생만 되어도 꿈이 뭐냐는 질문에 “몰라요!”라고 말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입을 닫는다. 모든 것이 성적과 연관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주눅이 든다.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느루에 오면 언제든 “어서 오라”며 대접받는 느낌을 받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