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동문 마을활동가(인천광역시 중구 공감마실터)
신화와 상상이 만든 인류와 공동체
인류는 언제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까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인류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류가 이러한 협동을 자처했던 까닭은 ‘신화’와 같이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꿈꾸고 믿을 수 있었던 인류의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도 했습니다.
농업혁명이 발생하고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류를 결집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꿈꾸는 이데아, 즉 상상의 영역이 필요했습니다.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으로까지 이어지자 국가와 시장은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예전보다 규모가 커진 인류 공동체의 유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류는 자연스레 신화를 더욱 강화해야만 했습니다.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 ‘과학’이란 새로운 기술과 맞닿아 결국 호모데우스, 신이 되고자 하는 인류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호모데우스의 출현은 인류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한 불멸의 욕망인 셈입니다.
도시재생을 통한 원도심의 부활
인천시는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을 비전으로 인천 내 신도시와 원도심 균형 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중구 신흥동의 경우 인천 도시재생 전략계획 상 중구에서 개항장, 연안부두와 함께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인천의 개항지와 산업 발전의 중심지였으나 인구 이탈, 산업 형태의 변화 등으로 경제적 활력을 잃고 사회적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점점 이탈하고 산업, 경제 등 전방위적인 하락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원도심 중의 원도심의 형태로 현재 남아 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구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합심으로 신흥동과 답동을 중심으로 ‘공감마을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선정되어 현재는 ‘공감마실터’라는 주민들의 거점 공간에서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회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소멸은 소리없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골목에는 고무줄 놀이를 하고 공을 차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빈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안전도 답보할 수 없습니다. 혼자 사는 중년가구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은 통계치에 들어올 수 없고 국가의 보조를 지원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고 실망한 주민들은 타지역으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비단 중구 공감마을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공감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자리 확충을 위한 산업 육성, 관광객 유치, 산학연 연계 등 인구 유인책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이 모든 과정에는 정답이 없고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도시의 소멸은 결국 마을의 소멸입니다. 마을의 소멸은 곧 주민들이 가꾸어 온 공동체의 소멸입니다.
그렇게 소멸되어 버린다면 우리의 존재는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어느 누구의 도움없이 서로와, 그리고 마을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나'로부터 시작하여 '서로'를 돌보기까지
‘자기 돌봄’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는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자기 돌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기 돌봄’이란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전과 평안을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자기 스스로 유지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온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돌봄’입니다. 그러나 생애주기를 거쳐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결국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시간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동도, 학습도, 밥을 먹고 문화를 즐기고자 해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고 대부분은 가장 먼저 혈연 공동체인 ‘가족’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족 돌봄’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이 없거나 도울 수 없는 경우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돌봄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간의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사회적 재난이 일상이 되면서 돌봄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 서비스를 더욱 확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공의 돌봄을 받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돌봄 대상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 돌볼 수 없고 내 혈연이 나를 돌볼 수 없다는 취약한 나를 증명해 내야만 공공 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기꺼이 증명해야만 합니다.
중구 공감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우리 마을의 문제를 ‘공동체 돌봄’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동체 돌봄이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존엄과 독립은 유지하면서 고립되지 않고, 거주하는 마을과 도시에서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가 지금은 건강하지만, 미래에는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주 먼 곳이 아닌 우리 마을과 공동체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원도심 속에 충분한 가능성
현재 중구 공감마을에서는 집수리 사업이 막바지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있는 ‘공감마실터’ 주민공동이용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담당자들은 더 많은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웹자보를 제작하고 홍보지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웹자보는 마을 곳곳에 붙여져 있으며, 길을 오가다 우리 마을 주민들과 대화가 필요한 누군가가 웹자보를 보고 정보를 교환합니다. 사업지 내 집수리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서류 지원을 주민들이 직접 도와주고 있고 아쉽게도 집수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주민들은 주택관리소 사무실로 찾아가서 지원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공감마실터 지하 공유주방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밥터디’(밥+스터디) 모임이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12시 각자 가지고 올 수 있는 반찬을 정답게 나눠 먹는 공동체이고, 아침을 먹지 못하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을 위해 이웃들이 등교 전까지 돌봐 주는 공동체 돌봄도 생겼습니다.
사라져 가는 마을의 형태를 기억하고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스케치북에 담고 있는 마을 예술가 공동체도 있고 마을 텃밭을 가꾸며 지구를 생각하고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지구 돌봄 공동체도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의제를 해결하고 마을을 돌보기 위한 협동조합도 생겨났습니다.
공감마을의 주민들은 이제 서로를 ‘확장된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원도심으로서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확장된 가족은 내옆에 있는 이웃이 될 수도 있으며 중간지원 조직일 수도 있고 공공기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 돌봄이 늘어난다는 것은 마을을 사랑하는 주민이 많아지고 관계망이 넓어지고 두터워진다는 것이며 마을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과 재능 그리고 시간을 주민 스스로가 타인에게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며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하길 좋아합니다. 제가 들려 드린 이야기들은 어떠셨나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주변에 전파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중구에서 오래 활동해 온 활동가이지만 평범한 주민이기도 합니다. 중구는 다양한 문화역사유산을 지닌 곳입니다. 그 가운데 신흥동과 답동 주민들이 합심하여 공감마실터를 운영하며 지역을 가꾸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있는 마을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 우리 공감마을의 이야기도, 당신이 머물거나 떠났거나 혹은 살고 있는 그곳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이야기가 경쟁력을 만드는 시대에 원도심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방향이며, 나아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힘이 될 것입니다.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111호 동시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