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곽은비(로컬 아키에이터)
최근 유행처럼 인천 내 여러 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에, 매일이 다르게 바뀌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기도 하다.
하루하루 고층 아파트들이 자라나고, 도심 속 철옹성처럼 단지화가 되어 재개발 전의 풍경과 모습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한순간에 잊혀진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아쉬워하며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대게 그동안의 지역 기록은 해당 지역을 오랫동안 살아온 중장년층이 자신들의 추억으로, 60~70년대 근현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80~90년생들이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자신만의 아카이빙 작업을 하는 지역 내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장년층에 비해 마을과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살아온 마을의 철거와 부재로 인해 생겨난 관심이 기록 작업과 연결되는 사례들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또래의 공감을 얻어내며 재미있고 색다르게 기록하는 방식이 그들만의 기록방식이다.
인천에서 가까운 서울에서는 이러한 청년들의 기록 활동이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재건축되는 자신의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가 있다.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의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삭막하다 비난을 받아온 ‘아파트’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아파트-키드’ 세대들이 자신의 삶과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건축으로 사라질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하여 마을 잡지를 발행하고, 나아가 영화까지 만들어낸 대규모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유년 시절 자신이 살던 반포주공아파트의 재개발 현장을 목격한 뒤 사라지는 서울 도시의 모습을 오래된 건축물, 맨홀 및 각종 휘장 등으로 기록하여 책으로 출판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계정도 있다. (https://www.instagram.com/journey.to.modern.seoul/ )
그렇다면 인천은 어떨까?
인천도 청년들의 시각으로 색다르게 풀어낸 아카이브 작업물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할머니가 47년간 살았던 동네를 손녀가 기록으로 풀어낸 채수빈 작가의 ‘주안4동 아카이브’가 있다.
색다른 시선으로는 인천 중구 신흥동의 사라져가는 일본식 가옥들을 건축, 사진,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시각으로 작가들이 기록한 동인천 탐험단의 ‘신흥동 일곱 주택’도 있다.
나아가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기관에서 인천의 사라진 장소를 추억하는 프로젝트들도 있었는데, 연수문화재단의 ‘송도유원지 아카이브’와 미추홀학산문화원의 ‘그때 그 시절 앨범 속 수봉산’을 예시로 들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인천에서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과 함께 추억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던 ‘송도유원지’와 ‘수봉 놀이동산’에 대한 추억을 수집하여 전시나 발간물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딱딱하다 생각하는 지역의 역사와 불특정 다수의 추억을 아카이빙 하는 데에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초석 같은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그동안 인천에서의 ‘지역 아카이브’라 하면 중장년층의 기억을 기준으로, 혹은 지역 문화원에서 역사적인 구술과 기록을 통해 풀어내던 도서와 기록이 다수였다.
구깃구깃한 흑백 사진 속 어르신들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따라 걷는 인천의 옛 모습이 지역 기록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필자는 오랜 시간 인천 내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인천사(仁川史)에 흥미를 느끼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며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래의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이 살던 마을에 대해 기록하는 일이 소수임을 인지하고, 개인적인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스스로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과 동네가 빠르게 재개발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 상실과 부재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자 작년 10월부터 직접 동네 기록 및 아카이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가장 사용하기 편한 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여, 살고 있는 동네인 ‘미추홀구 학익동’의 재개발 과정을 작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누군가 우리 동네의 마지막을 기록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살아가고 있는 주민이 나서서 지역 기록을 시작해야 더 의미 있게 애정을 가지고 동네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동네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넓은 학익동 중 필자의 등하굣길이자 생활권인 학익초등학교~학익사거리 일대의 ‘학익3구역’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을 진행하고 있다.
기록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미 주민 다수가 빠져나간 마을을 기록했기에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부족했다.
이를 마을공동체와 연계하여 주민들이 빠져나가기 전에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면 더욱 풍성한 이야기와 다양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
또한 개인적으로 기록을 하다 보니 부딪치는 한계가 많았다. 특히 오래된 마을에 대한 궁금증이나 추억이 부족했다.
학익3구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세운 아마(亞麻) 제품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 ‘제국제마주식회사’가 있었고, 공장 간부 숙소가 현재까지도 일부 남아있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으로 사택들이 있었고, 그와 관련된 주민들의 이야기도 다양할 것 같았지만 이미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시작된 기록은 그러한 이야기까지 담기에는 한계가 컸다.
이렇게 지역을 기록하는 일에 있어서 마을공동체와 함께 진행한다면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풍성하고 의미 있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다양한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마을들에 대한 아카이빙 사업으로 ‘마을 기록’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인천 내에서도 마을 기록에 대한 수업을 통해 마을활동가를 양성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취지의 사업들이 장기적으로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마을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재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변화한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기존의 구획과 마을이 사라지며 도시 마을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마을활동가가 늘어난다면, 지역을 기록하는 마을활동가들의 활동이 계속된다면, 마을공동체가 해체되어도 그들의 개인적인 활동의 지속으로 마을 활동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역을 기록하는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하여, 좀 더 체계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작업들이 인천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의 기록 작업은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hagik_archive/ )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106호 동시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