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윤춘근(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1. 생각의 시작: 존엄하게 살다 품위 있게 죽을 수는 없는 것일까?
1) 가족의 손을 떠나는 돌봄
사회복지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적 대응이다. 후기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등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에 더해 저출산·고령화, 가족의 돌봄기능 약화, 노동시장 양극화 등 인구사회적 변화에 의한 신사회적 위험이 더해진다. 이들 중 돌봄 위기는 코로나19를 거치며 ‘돌봄 재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민의 삶, 특히 사회경제적 자산이 부족한 계층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60대 후반부터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감소되면서, 고혈압, 당뇨, 뇌졸중, 폐렴, 낙상으로 인한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한다. 자녀들은 육아나 생계 문제로 간병이 어렵다. 결국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한다. 열악한 임금·노동조건 아래서 적은 간병 인력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한사람 한사람 세심한 인격적 돌봄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일당 10만~15만원인 사설 간병인을 몇 년간 둘 수도 없다. 누워 있는 모든 노인 환자들의 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이 꿈을 이루는 이는 거의 없다… 몇 차례 응급상황이 벌어지고, 처치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신영전 칼럼, ‘최빈도 죽음’, 즉 우리가 맞이할 죽음, 한겨레, 2022.5.17.)전통사회에서는 가족,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이 돌봄을 떠받쳐왔으나,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가족 규모가 축소되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가족 중심 돌봄은 위기에 봉착했다. 그렇다고 돌봄을 재가족화하고 재여성화하는 건 시대적 흐름에 어긋난다.
가족의 손을 떠난 돌봄은 결국 국가에 의한 공적 돌봄과 시장(市場)에 의한 사적 돌봄으로 정리된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돌봄 수요가 더욱 급증하면서 이 두 가지 형태의 돌봄 모두 늘어나고 있다.
2) 왜곡된 돌봄
공적 장기요양 보호율과 장기요양 기관이용자의 증가는 돌봄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통계와 함께 보면 우리나라에서 돌봄의 사회화가 매우 왜곡된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의 전체 병상 수는 2010년 이후 연평균 3.4%씩 증가해왔지만, 요양병원의 병상 수는 연평균 10.3%씩 증가해왔다(그림1).
국민의 평균 재원 일수도 OECD 평균은 7.4일이지만 한국은 19.1일로 1위이다. 2020년 전체 사망자의 75.6%는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사망했고, 65세 이상 노인은 의료기관 사망 비율은 78%이다(박중철, 2022). 이러한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늙거나 아프면 자기 집에서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돌봄을 받다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죽음, 즉 ‘최빈도 죽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1] 의료기관 종류별 병상 수(2010~2019), * 출처: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0).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20. p.308
유교적인 전통이 남아 있으니 서구국가보다 노인을 잘 봉양할 것이라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시설 돌봄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장기요양보험등급 3등급 이하, 등급외자, 등급을 받지 못한 자 등 선진국에서는 건강기능 상태가 나쁘지 않아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 10명 중 6명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하면 2년 이내에 4명 중 1명이 사망하고, 5명 중 1명은 건강기능 상태가 악화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김윤, 2022).
‘건강 악화→요양병원·요양원 입소→사망’이 우리나라 노인의 전형적인 삶의 궤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인생의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누리다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인가?
2. 돌봄을 위한 제3의 길: 주민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 돌봄
“주민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민에게 줘야 한다.
특히 주민이 소비하는 것이라면 생산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을공동체의 목적은 마을 사람들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되는 것이다”
대구 안심마을 활동가 이형배 이사장(마을과 자치협동조합)1) 공적 돌봄과 사적 돌봄의 사이: 공동체 돌봄
공적 돌봄시스템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돌봄 공백은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간병인, 아이돌보미, 가사도우미 등을 이용하라는 각종 광고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제공하는 돌봄은 편리한 대신 매우 비싸다. 2021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4년 형을 선고받은 ‘강도영 청년’의 경우, 아버지의 병원비와 요양병원 입원비 약 2천만 원 중 약 700만 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던 간병 비용이었다고 한다.
시장형 돌봄은 높은 비용도 문제이지만,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돌봄의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언터처블: 1%의 우정’ 영화에서처럼 돌봄서비스 시장에서 만난 이용자와 제공자 간에도 신뢰와 친밀한 관계가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료 지불 능력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양과 내용이 결정되는 시장 시스템하에서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관계’는 ‘이용자와 제공자’ 혹은 ‘구매자와 판매자’로 규정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고유한 특질은 지워진 채 하나의 상품이 되어 전달되는 돌봄, 이런 돌봄 속에서는 돌봄을 받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의 존엄성이 함께 존중받을 수 있는 ‘인간적인 돌봄’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국가나 시장이 아닌 돌봄을 위한 제3의 길은 없는 것일까?
[그림2] 돌봄시스템에서 공동체 돌봄의 위치, * 출처: 서윤정 외(2021) 인천형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델 개발 연구. 인천광역시사회서비스원. p.216.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가 주도하는 공적 돌봄과 개인이 주도하는 사적 돌봄의 사이에는 이 두 영역의 특성을 아우르면서도 독자적인 돌봄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공동체 돌봄이 있다. 공동체 돌봄은 정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지도 않는 제3의 돌봄 영역이다. 공동체 돌봄에서는 돌봄의 내용과 방법을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같이 결정한다. 주민은 돌봄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고, 돌봄의 이용자이며 동시에 제공자이다.
2) 공동체 돌봄 사례: 안심마을과 번암리
안심마을은 공동체 돌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구시 동구에 자리 잡은 안심마을은 2003년 시민단체와 몇몇 주민들을 중심으로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하면서 움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마을공동체 활동은 2008년에 어린이도서관 ‘아띠’를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열매를 맺었고, 이어서 사회적 기업인 ‘동구 행복 네트워크’와 LH 단지 공부방, 그룹홈, 로컬푸드매장인 ‘땅이야기’를 설립한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는 안심마을 협의체인 안심마을 사람들은 협동조합 11개소, 사회적협동조합 4개소, 복지법인 2개소와 종합복지관, 가족센터, 발달장애 가족 전담교회, 아름다운 가게, 작은 도서관, 문화단체, 대동계 등등을 아우르는 풍성한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자신의 수요를 공동체의 수요로’라는 슬로건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내가 필요한 돌봄을 공동체와 함께 생산해가려는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그림3] 안심마을 지도, * 출처: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홈페이지(http://hansarang1992.or.kr/hansarang/)에서 갈무리
안심마을 외에도 돌봄협동조합, 마을 단위 돌봄공동체 등 공동체 돌봄을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주민들이 토지와 건물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여 사용하는 지역 자산화(젠트리피케이션, 원도심 공동화 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지역 자산화, 공동체 자산화, 사회적 부동산 등으로도 불린다. 주민들이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함은 물론 자산의 관리와 운영에도 민주적으로 참여하며, 자산운용을 통한 이익도 지역 공동체와 공유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다) 운동과 결합해 공동체 돌봄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는 중이다.
세종시 조치원읍 번암리에 있는 번암빛돌 마을 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번암빛돌조합)은 지역 자산화와 연계한 공동체 돌봄의 좋은 사례이다. 번암빛돌조합은 번암리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번암리가 2019년에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된 후,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의 돌봄 수요에 대응하고자 2021년 4월부터 돌봄서비스 사업을 위한 주민TF팀을 운영하고 2021년 7월에는 돌봄서비스를 포함하는 마을관리협동조합 사업을 승인했다.
번암리에서는 이미 부녀회와 노인회 등에서 마을회관을 마을 자산으로 활용 중이었다. 번암빛돌조합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 이용시설 내 주간보호센터 및 안심케어 주택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조합원 역량 강화와 함께 사회복지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 관련 자격과 경험을 보유한 주민들을 발굴하여 노인돌봄서비스를 준비 중이다(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2021).
3. 공동체 돌봄을 위한 조직 만들기
“변혁적 힘은 국가가 통제하고 시장이 상업화했던 공간을 전취하여 다시 공유지로 전환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34).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어린이집을 만들어 여기에 국고지원을 요구하는 것과 우리 아이들을 아예 국가 앞으로 데리고 간 뒤 하루 5시간이 아니라 15시간 동안 돌봐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판이한 일이다(48).”
– 실비아 페데리치(2013) 혁명의 영점1) 공동체 돌봄을 위한 조직의 절실함
현재 아동 돌봄은 공적 돌봄의 확대로 가족 돌봄이 불가한 경우 상당한 비용을 들여 구매해야 하는 시장형 돌봄만이 대안이었던 그 시절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노인과 장애인을 비롯한 성인 돌봄은 그에 못 미친다. 물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이후로 여러 가지 노인돌봄서비스가 만들어졌지만, 재원은 공적이되 운영은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비스 방식이 주를 이루다 보니, 세금을 세금대로 쓰면서도 이용자도 제공자도 만족스럽지 못한 형국이다.
이러한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값싸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정부나 지자체에 대고 끊임없이 요구할 것인가? 물론 돌봄 위기라는 거대한 사회적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돌봄 노동자가 생계를 위한 노동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표준화된 돌봄서비스를 받는 것만이 돌봄 욕구를 충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돌봄서비스의 소비자로 남는 것은 돌봄을 해결하는 편리한 방법이기는 하나, 돌봄이라는 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업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데 아동양육시설에 보내지는 어린이나, 원하지 않는데 장애인시설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장애인이나, 원하지 않는데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 노인이나 모두 같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노인이 의료시설이나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시하게 되었을까?
자기 아이를 돌보지 못해 시설에 보내는 것과 자기 부모나 형제를 돌보지 못해 시설에 보내는 것은 왜 그렇게 다른 무게로 다루어져야 하는가? 아동 돌봄에서는 당당한 유형으로 자리 잡은 공동육아조합이나 육아 품앗이 등이 왜 성인 돌봄에서는 그렇지 못한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노인을 돌보기 위해서도 한 마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공동체 육아가 가능하다면, 공동체 돌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 부모는 물론 나라 전체가 계속 늙어가고 있다. 돌봄은 나날이 절실해지고, 공동체 돌봄의 필요성도 점점 더 절실해진다. 이제 지역 안에서 공동체적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돌봄자들의 연대조직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할 때다.
2) 공동체 돌봄은 민주적 돌봄
돌봄 위기는 현재 가장 심각한 사회적 위험 중 하나이다. 돌봄이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침해당하고 삶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부모나 형제를 스스로 돌보기로 한순간, 내 일상까지 무너지는 것이 확실해지는 세상에서는 누구도 선뜻 돌봄자의 길로 들어서기 어렵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함께 돌볼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면, 돌봄자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돌봄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인 것은 맞지만, 정부가 주체가 되어 모든 돌봄서비스를 만들고 국민은 그 서비스를 이용만 하며 정부 기관에 ‘이걸 해달라, 저걸 해달라’고 불평불만만 하게 되는 것은 돌봄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영혼이 있는 존재이고, 비록 노쇠나 장애나 질병으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존중받는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민주적 돌봄은 너와 나,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가 모두 돌봄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돌봄에 참여하는 것이다. 소위 독박 돌봄이 없어지고, 돌봄을 여성이나 인종적, 계급적 약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공동체를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로 구분하는 장벽을 철폐한 상태이다. 누구나 돌볼 수 있고 또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대로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직접 돌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돌봄을 위한 자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저마다의 처지와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민주적 돌봄의 분명한 원칙은 돌봄을 위한 의사결정을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공동육아조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돌봄서비스를 기획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봄을 제공할 사람을 찾고, 돌봄이 전달되는 과정을 모니터링해서 더 나은 돌봄을 준비하는 돌봄의 전 과정에서,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 모두가 평등한 주체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공동체 돌봄의 주체는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민이다. 본인이 꼭 돌봄자일 필요는 없지만, 돌봄의 주체로 활동할 의지는 있어야 한다. 돌봄은 매일 먹고 씻고 배설해야 하는 사람을 돌보는 실질적인 실천이기 때문에 머리나 입이 아닌 손발로 하는 실천이 매우 중요하다. 돌봄을 기획하거나 돌봄에 대해 교육을 하겠다는 사람만 가득하고 직접적인 돌봄 실천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면 돌봄공동체는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 수발처럼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있거나 돌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현역은 아니더라도 요양보호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돌봄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을 이미 해 본 주민이라면 더더욱 좋다. 향후 마을 돌봄 활동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능적 실천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종사자의 대표 격인 요양보호사의 경우, 실제로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과정에서 돌봄에 관한 관심이 커져서, 또는 자신의 가족을 좀 더 전문적으로 돌보고 싶어서 이 과정을 택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요양보호 같은 돌봄노동을 단순한 호구지책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3) 공동체 돌봄 조직화
이러한 공동체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조직화하는 것은 주민 만나기로 시작한다. 학습모임을 통해 공동체 돌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눈높이를 맞춘다. 지역조사와 공동체 돌봄 계획 세우기 단계를 통해 돌봄공동체로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한다. 이때의 핵심과제는 우리 공동체에서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상과 목표는 크게 가지더라도 실천은 마을의 자원과 공동체 구성원의 역량에 맞춰 차근차근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돌봄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마을이 돌봄의 수요자이자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단계이다. 공동체는 돌봄 계획만 세우고 정작 필요한 돌봄은 외부에서 데려와 고용한 사람에게 맡긴 후 공동체 구성원은 돌봄의 소비자로서 주저앉아버린다면 기존의 사적·공적 돌봄 체계와 차이가 사라진다. 공동체 돌봄 마을에서는 돌보는 사람도 임금을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공동체 일부로서 공동체 돌봄의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이같이 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마을 돌봄 시작 단계에 이를 수 있다. 마을 돌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회적협동조합 방식의 돌봄 분야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미 돌봄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들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돌봄 수요의 급증에 따라 돌봄 분야로 눈을 돌리는 사회적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안심마을과 번암리도 협동조합 등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마을에서 필요한 돌봄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3. 나가며: 공동체 돌봄 활성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비슷한 지역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사회 하부 구조’, 즉 인도와 상점, 공공시설, 친구와 이웃 사이를 연결해주는 공동체 조직 등에 있었다… 흑인이거나 가난해서 더위에 취약했던 게 아니라 공동체가 방치한 게 원인이었다… 재난이 닥쳤을 때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시민사회라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시민이 단독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막대한 자원과 능력으로 대규모 계획을 통합하여 다른 어떤 집단보다 기후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13~29)”
– 에릭 클라이넨버그 「폭염사회」공동체 돌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의 하나가 공동체 돌봄은 ‘주민들이 알아서 된다’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주민들이 자발적인 주체로 나서는 것이 공동체 돌봄에 무엇보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오막조막한 마을공동체들에 비할 수 없이 막대한 자원과 능력이 있는 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공동체 돌봄을 지원한다면 공동체 돌봄을 훨씬 더 빨리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번암빛돌 마을 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의 주민주도 돌봄 사업도 국토부와 세종시의 지원을 발판으로 시작되었다.
지방자치단체는 돌봄 공간 등 공동체 돌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줄 수도 있고, 개별 공동체가 연계하기 힘든 돌봄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공동체 돌봄을 희망하는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방법은 보조금을 주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해야 하는 사무를 일부 위탁하는 사회복지기관이나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운영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마을공동체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는 갑을관계가 아닌, 지역의 주인인 주민과 주민을 위해서 일하는 지방정부 간의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공동체 돌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원하는 돌봄, 주민이 하고자 하는 돌봄이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경청하고, 돌봄의 형태 및 운영방식도 철저하게 주체들 간의 협의를 토대로 결정해야 한다.
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들은 예산을 만들어 서비스를 구매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에 기반한 민주적인 돌봄이 자리잡힌다면, 그 돌봄의 깊이와 영향력은 몇몇 돌봄 종사자가 직업으로 제공하는 돌봄에 비길 수 없을 것이다. 인천시의 공동체 돌봄에 관한 관심과 투자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윤(2022) 재정통합 기반 지역돌봄체계 구축 방안. 「사회보장제도 진단과 대안 모색」. 국정과제협의회 정책기획시리즈 09.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박중철(2022)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갑우문화사.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0).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20.
서윤정 외(2021) 인천형 지역사회 통합돌봄 모델 개발 연구. 인천광역시사회서비스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2021) 「마을관리협동조합 등 주민 중심형 사회적경제 기업의 거점시설 기반 노인돌봄서비스 사업모델」.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102호 동시 발행